[일기] 2001_12_25 가평 사진 여행
2001/12/25 00:00
오래 전처럼 난 또 가평을 다녀왔다. 무엇이 그리도 정리할 것이 많은지... 나의 명목은 오로지 확 트인 자연 속에서 나를 가다듬고 정리하기 위함이었다. 거칠고 울퉁불퉁한 땅을 삽과 곡괭이로 파고 골라서 평탄화 시키듯 나의 마음 속에 흉한 모습으로 삐죽삐죽 솟아있는 마음의 멍울들을 가라앉히고 싶었다.
내가 어릴 적 뛰놀던 집과 개울, 그리고 논두렁을 거닐면서 오래 간만에 느껴보는 진한 만족감에, 시린 바람이 손등을 차갑게 스치는 느낌도 잊은 채 챙겨간 카메라로 하나하나를 화폭에 담아내었다. 추위도 잊은 채 스케이트장을 만드는 어린 병사들의 손길을 바라보며 내 자신이 무척 사치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두껍게 껴입은 스웨터와 남방, 그리고 체크무늬 반코트에 남청색 목도리까지 하고는 비싼 카메라를 목에 걸고 하염없이 길을 걷는 내 모습이 말이다. 누군가의 명령에 일을 하는 것이겠지마는 그런 저 병사들보다 무제한의 자유가 있는 나의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워 조금씩 움츠러들고 있었다.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이 곳에 불어오는 북한강의 찬 기운이 폐 속 깊숙히 자리하고는 내뱉는 호흡에도 찬 기운을 느끼게 한다. 자갈과 바위, 모래가 많은 개울가를 오래토록 걸었다. 도중에 만난 신병들의 기나긴 행군행렬에 잠시 머뭇거리긴 했지만 묵묵히 난 기억의 파일을 담아내었다. 때로는 쓰디쓴 웃음으로, 때로는 찡한 슬픔으로, 때로는 활짝 웃는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하늘로 시선을 돌리며, 한장, 한장 지나간 시간들을 정리해 나갔다. 이때는 이래서 슬펐고, 이때는 이래서 기뻤고, 못다한 말들과 내 마음 깊은 곳의 기억들까지... 그리고는 예전과는 사뭇 달라진 나의 고향을 거닐며 조심스레 지난 날 다니던 초등학교의 작은 교문을 밀고 들어갔다. 축구를 차며 신나게 뛰노는 아이들만이 이 작은 농촌의 정적을 깨주고 있었다. 조그마난 벤치에 앉아 흥미롭게 경기를 지켜보는 여자아이 둘이 있어 말을 걸어볼까 했는데, 아직은 그럴 용기가 나질 않아 운동장 외곽을 돌면서 구석구석 나의 흔적들을 필름 속에 담아내었다. 유치원 다닐 때, 어머니를 졸라 자전거를 산 지 이틀만에 잃어버리고는 엉엉 울며 앉아 있던 교단도 그대로 있다. 지금은 축구구경에 여념이 없는 꼬마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는게 과거랑 다를 뿐이다. 난 그 때의 기억을 되살리며 작은 미소를 띄운 채 그렇게 과거의 시간을 지나쳐 갔다.
오일장이 서는, 나름데로 번화가라 불리는 그 골목에서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흥정소리가 들리자 그 곳으로 가보았다. 서울의 남대문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사는 사람은 저마다 값을 깎으려하고, 파는 사람은 인상을 찡그리며 남는게 없다 하고... 이렇듯 사람사는 모습의 단면들을 나에게 설명해 주고 있었다. 사는 것이 이처럼 자연스럽고 평화로우면 좋으련만 하는 생각을 하며 곧 출발할 상봉동행 버스를 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매점에 들러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몇 가지 먹을 거리를 산 후에 훌뻑 차에 올라 6년만에 다시온 고향의 모습들을 뒤로하고는 서서히 움직이는 차 속의 포근한 의자에 눌러앉아 그렇게 다시금 서울로 향했다. 살며시 나의 몸을 파고드는 피로감에 정적 속의 야경들이 지나가는 지도 모르게 난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내가 어릴 적 뛰놀던 집과 개울, 그리고 논두렁을 거닐면서 오래 간만에 느껴보는 진한 만족감에, 시린 바람이 손등을 차갑게 스치는 느낌도 잊은 채 챙겨간 카메라로 하나하나를 화폭에 담아내었다. 추위도 잊은 채 스케이트장을 만드는 어린 병사들의 손길을 바라보며 내 자신이 무척 사치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두껍게 껴입은 스웨터와 남방, 그리고 체크무늬 반코트에 남청색 목도리까지 하고는 비싼 카메라를 목에 걸고 하염없이 길을 걷는 내 모습이 말이다. 누군가의 명령에 일을 하는 것이겠지마는 그런 저 병사들보다 무제한의 자유가 있는 나의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워 조금씩 움츠러들고 있었다.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이 곳에 불어오는 북한강의 찬 기운이 폐 속 깊숙히 자리하고는 내뱉는 호흡에도 찬 기운을 느끼게 한다. 자갈과 바위, 모래가 많은 개울가를 오래토록 걸었다. 도중에 만난 신병들의 기나긴 행군행렬에 잠시 머뭇거리긴 했지만 묵묵히 난 기억의 파일을 담아내었다. 때로는 쓰디쓴 웃음으로, 때로는 찡한 슬픔으로, 때로는 활짝 웃는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하늘로 시선을 돌리며, 한장, 한장 지나간 시간들을 정리해 나갔다. 이때는 이래서 슬펐고, 이때는 이래서 기뻤고, 못다한 말들과 내 마음 깊은 곳의 기억들까지... 그리고는 예전과는 사뭇 달라진 나의 고향을 거닐며 조심스레 지난 날 다니던 초등학교의 작은 교문을 밀고 들어갔다. 축구를 차며 신나게 뛰노는 아이들만이 이 작은 농촌의 정적을 깨주고 있었다. 조그마난 벤치에 앉아 흥미롭게 경기를 지켜보는 여자아이 둘이 있어 말을 걸어볼까 했는데, 아직은 그럴 용기가 나질 않아 운동장 외곽을 돌면서 구석구석 나의 흔적들을 필름 속에 담아내었다. 유치원 다닐 때, 어머니를 졸라 자전거를 산 지 이틀만에 잃어버리고는 엉엉 울며 앉아 있던 교단도 그대로 있다. 지금은 축구구경에 여념이 없는 꼬마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는게 과거랑 다를 뿐이다. 난 그 때의 기억을 되살리며 작은 미소를 띄운 채 그렇게 과거의 시간을 지나쳐 갔다.
오일장이 서는, 나름데로 번화가라 불리는 그 골목에서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흥정소리가 들리자 그 곳으로 가보았다. 서울의 남대문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사는 사람은 저마다 값을 깎으려하고, 파는 사람은 인상을 찡그리며 남는게 없다 하고... 이렇듯 사람사는 모습의 단면들을 나에게 설명해 주고 있었다. 사는 것이 이처럼 자연스럽고 평화로우면 좋으련만 하는 생각을 하며 곧 출발할 상봉동행 버스를 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매점에 들러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몇 가지 먹을 거리를 산 후에 훌뻑 차에 올라 6년만에 다시온 고향의 모습들을 뒤로하고는 서서히 움직이는 차 속의 포근한 의자에 눌러앉아 그렇게 다시금 서울로 향했다. 살며시 나의 몸을 파고드는 피로감에 정적 속의 야경들이 지나가는 지도 모르게 난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